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문단 편집) === 메시나 점령 === 1사단이 트로이나에서 분투하는 동안 3사단도 추축군 에트나 방어선의 최북단인 산프라텔로에서 제29장갑척탄병사단의 저항과 마주쳤다. 트루스캇 장군은 정면돌파를 하는 대신 소수의 부대를 적 후방에 상륙시키는 작전을 선택했고 적의 의표를 찌르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29사단의 주력이 이미 간밤에 빠져나간 뒤인지라 1000명의 포로를 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사단은 8월 11일 재차 이 작전을 수행하였으나 이번에는 투입된 침투부대의 규모가 너무 작아 29사단의 철수를 막지 못했다. 이후로는 독일군이 지뢰밭을 조성한 탓에 진군이 늘어지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후베 장군의 추축군은 속속들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고 있었다. 이 와중에 8월 16일 미군이 최후로 후방상륙을 다시 시도했으나 '내리고 보니 아군 후방'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결국 17일 살아남은 모든 추축군이 시칠리아를 떠났고, 마지막 수송선이 떠난 지 한 시간 쯤 지나서 미군 3사단 7연대가 가장 먼저 메시나에 입성했다. 패튼은 혹시나 영국이 전공을 가로챌까봐 윌리엄 이글스 장군의 증원군을 급파했다. 그러나 패튼의 걱정과는 별개로 영국군은 패튼이 메시나의 공식적인 항복을 접수한 뒤에나 등장했다. 패튼으로서는 완벽한 승리로 복수라는 목적을 달성한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